‘라이스보이 슬립스’ 한국계 캐나다 감독 앤서니 심, 각본·연출·제작 등 ‘1인 5역’ 맡아
 ▲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부산국제영화제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와 짝을 이루는 작품.”(영국 스크린 데일리)
영국 영화 매체의 평처럼 4월 19일 국내 개봉을 앞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캐나다판 미나리’로 불리는 영화다. 배우 윤여정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미나리’가 1980년대 미 남부에 정착하기 위한 한인 대가족의 고군분투를 다뤘다면, 이 영화는 1990년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한인 모자(母子)의 정착기를 그렸다. ‘라이스보이 슬립스’ 역시 지난해 캐나다 밴쿠버 영화제 최우수 캐나다 작품상·관객상, 토론토 영화제 플랫폼 심사위원상 등을 받았다.
 ▲ 남편과 사별하고 캐나다로 떠난 엄마 ‘소영’(최승윤·오른쪽)에게는 아들 ‘동현’(황도현)이 세상과의 유일한 끈이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낯선 땅에 떨어진 모자의 외로움을 공들여 표현한다. /판씨네마
이 영화를 연출한 한국계 캐나다 감독 앤서니 심(한국명 심명보·37)은 30일 간담회에서 “어린 아이가 한인(韓人)이라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떠나는 정서적 여정(emotional journey)이라는 점과 모자 관계가 실제 제 삶과도 닮았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심 감독 역시 여덟 살 때 가족들과 함께 밴쿠버로 이민을 떠났다. 그는 “캐나다 학교에서 왕따와 놀림을 당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교장 선생님과 한판 붙으시는 장면들도 실제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제목인 ‘라이스보이(Riceboy)’ 역시 도시락 속의 김밥 때문에 캐나다 학교 아이들에게 놀림당하는 장면에서 가져왔다. 그는 이날 사전 배포한 편지에서 “밴쿠버에서 성장할 적 종종 학교에서 유일한 동양인 아이였다. 마치 외계인 같은 취급을 받았고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호기심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 포워드' 부문 초청작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연출한 앤서니 심 감독이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오픈토크 하고 있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대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이들을 다룬 영화로 '제2의 미나리'로 불리고 있다. 2022.10.10/뉴스1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 포워드' 부문 초청작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연출한 앤서니 심 감독이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오픈토크 하고 있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대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이들을 다룬 영화로 '제2의 미나리'로 불리고 있다. 2022.10.10/뉴스1 심 감독은 두 번째 장편인 이번 영화에서 각본·연출·제작·편집은 물론, 조연(助演)까지 ‘1인 5역’을 맡았다. 캐나다에서 영화·드라마 배우와 연극 제작자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9년 장편 ‘도터’를 통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는 “학교에서 영화 제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각본을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면서 배워 나갔다”고 말했다. 저예산 영화 감독으로서 설움을 톡톡히 맛본 셈이지만, 그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촬영을 할 때도 영화 편집을 미리 생각하면서 작업할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아마 다음 작품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배경이 바뀌면서 화면 비율이 달라진다는 점도 이 영화의 재미 가운데 하나다. 전반부의 캐나다 장면은 예전 영화나 드라마처럼 작은 화면을 택했지만, 거꾸로 후반부에 이들 모자가 방한(訪韓)하면서 요즘 영화처럼 탁 트인 화면으로 확장된다. 심 감독은 “캐나다는 땅도 집도 넓지만 이민자들의 힘들고 외로운 삶을 보여주기 위해 좁은 화면을 택했다. 거꾸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정신적으로 넓어지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정서적 해방감이 담긴 선택이었던 셈이다. 심 감독은 “어릴 적 한인이라는 단어가 ‘욕’으로 인식되다가 점차 자랑스러운 말로 바뀌는 과정을 작품에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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